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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gen 8. 손을 잡아준다는 것

페이지 정보

조회수 744 작성일 2021-10-20 14:21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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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별 말 없이 걷다 보니 번화가를 지나 한적한 골목길로 들어섰다. 이제 그녀의 집까지는 불과 백 걸음 밖에 남지 않았다. 그마저 저기 보이는 골목을 돌아 집 창문이 눈에 들어올 때쯤이면 그녀는 부모님 눈치 보인다면서 나보고 돌아가라고 할 것이다. 아무리 천천히 걸어도 이제 남은 시간은 1~2분 남짓. 그녀의 왼손은 나의 오른손과 종잇장 차이만큼 가까이 있다. 모르는 척 손등을 살짝 부딪쳐 봤다. 뜻밖에 별 반응이 없다. 사흘전에는 스치기가 무섭게 손이 사라졌었지. ‘그래 지금 아니면 기약이 없어.’ 엄지와 검지로 그녀의 새끼 손가락과 네째 손가락을 살짝 잡았다. 뜬금없이 허공을 바라보면서. 아 그런데… 그녀의 손이 미끄러지듯 내 손으로 들어온다. 결국 잡았다! 만난지 열흘 만에.  


용기 빼면 시체라고 외치고 다니던 A도 새로 사귄 여자친구의 손 잡아 보기란 쉽지 않았다. 되돌아보면 그 추운 겨울 날 여자친구 B가 장갑을 안 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손등을 스쳐도 가만히 있었을 것이고, 새끼 손가락을 잡자 마자 쑤욱 손을 내주었을 테지. A와 B는 이렇게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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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낌이 오잖아. 떨리고 있잖아. 

언제까지 눈치만 볼거니.

네 맘을 말해봐. 딴청 피우지 말란 말이야. 

네 맘 가는 그대로 내 손을 잡아. 

어서 내 손을 잡아.   

(아이유, 내 손을 잡아)


사랑은 역시 서로의 손을 잡는 일부터 시작된다. 아마 대부분 연애에서 사랑한다는 고백보다 손을 잡는 게 더 먼저일 것이다. 여자와 남자가 처음 손을 잡는다는 건 엄청난 이벤트다. 서로 모르고 지내던 두 사람이 앞으로 삶의 상당부분을 공유하겠다는 첫 약속이다. 한번 손을 잡고 나면 안잡게 되기 어려워진다. 손잡던 사람이 갑자기 안잡는 것 자체가 메시지로 읽히니까 그렇다. 매일 손을 잡다가 하루 안잡으면 상대는 의심을 시작한다. 한겨울에도 맨손을 잡고 체온을 나누던 사람이 어느 날 장갑을 끼고 있으면 ‘이건 뭐지?’하는 생각이 든다. 손을 늘 가볍게 잡다가 문득 힘주어 잡으면 ‘뭔가 결심을 했구나' 느끼면서 자기도 덩달아 힘을 준다. 가만히 잡고 있지 않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면 가슴이 콩콩 뛰기 시작한다. 손을 잡는다는 건 놀라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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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영향 탓에 손잡는 일이 드물어졌다. 가장 흔한 손잡기인 악수 대신 주먹을 서로 맞대자고 하는데 아무래도 어색하다. 일전을 벼르는 권투선수들끼리 노려보며 글러브를 마주 대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손을 잡는다는 것은 주먹이 아니라 손바닥을 상대방에게 내어 주는 행위이다. 손바닥에는 나의 삶이 들어있다. 거친 노동을 하는 사람은 손바닥이 거칠 것이고, 감정이 뜨거워진 사람은 손바닥이 뜨거울 것이다. 어떤 이들은 손바닥이 지금의 내 삶 뿐 아니라 미래의 삶까지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손금 때문이다. 내 미래의 삶을 그린 손금이 상대방의 미래를 그리는 손금과 맞닿는다는 것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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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수의 기원은 무기를 들고 싸우던 시절 ‘나는 손에 무기를 들고 있지 않으니 당신을 해칠 뜻도 없다'는 메시지였다고 한다. 일리 있는 설명이다. 사람들이 더이상 손에 장검이나 도끼를 들고 다니지 않게 된 지금 악수는 평화적인 뜻으로만 쓰이는게 아니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악수할 때마다 강한 악력으로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악수가 오히려 상대방을 제압하려 한다는 느낌을 주고 불쾌감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직원들과 악수하면서 손가락만 살짝 잡고 마는 사장의 악수는 ‘형식적으로 하기는 하지만 이 악수는 큰 의미는 없어'라는 속마음을 무의식 중에 전달하기도 한다. 심지어 악수를 하면서 검지로 상대방의 손바닥을 간질거리는 사람도 있다. ‘뭐하자는 거야?’하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이제 악수는 평화의 신호를 넘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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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끼리 손을 잡는 것은 사랑의 커뮤니케이션이다. 부부가 손을 잡는 것도 마찬가지다. 함께 하겠다는 메시지다. 기업이나 단체끼리 무슨 일을 같이 한다고 발표할 때도 어김없이 ‘우리가 손잡고 일하기로 했습니다'라고 말한다. 법인건물 어디를 뒤져봐도 다섯 손가락과 손바닥은 없지만 그래도 굳이 손을 잡는다고 표현한다. 그만큼 손잡는 의미가 크기 때문이다. 기업, 단체 뿐 아니라 나라끼리도 손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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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서울 올림픽의 주제가가 코리아나의 <손에 손 잡고>로 결정됐던 것은 시의적절했다.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불 , 우리들 가슴 요동치게 하네.

이제 모두 다 일어나 영원히 함께 살아가야 할 길. 나서자.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우리 사는 세상 더욱 살기 좋도록.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서로서로 사랑하는 한마음 되자. 


88 올림픽은 여러모로 특별한 이벤트였다. 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이 자유진영의 보이코트로, 84년 LA 올림픽은 공산진영의 보이코트로 전세계 최대의 스포츠 이벤트가 두차례 연속 반쪽으로 치러진 터였다. 그래서 88 올림픽은 인류가 핵전쟁의 공포와 냉전의 혹한를 뒤로 한 채 함께 손잡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개최됐다. 주제가가 <손에 손 잡고>인 게 자연스러웠다. 이 곡은 세계 곳곳에서 음반차트 1위를 기록했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올림픽 역사상 최고의 주제가 가운데 하나로 꼽히고 있다. 


인간 관계에서  ‘나는 너와 함께 할게'라는 말보다 손을 잡는 게 더 강력한 이유가 몇가지 있다. 우선 손을 잡으면 체온이 전달된다. 체온을 따라 감정도 전달된다. 말이 필요 없다. 둘째, 손을 잡으면 서로의 거리가 가깝게 고정된다. 혼자 갈 수 없다. 보폭과 리듬을 맞춰야 한다. 말보다 몸으로 함께 가기를 실천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 손을 잡으면 다른 일을 할 수 없다. 오른손을 잡고 왼손으로 핸드폰을 보거나 담배를 피우면 되지 않냐고? 그런 대책없는 시도는 하지 않기 바란다. 빈 손으로 다른 일을 하기 시작하는 순간 상대와 맞잡은 손은 힘이 빠지고 움직임에 무감각해진다. 상대방은 금새 손의 관심이 식었다는 사실을 알아챈다. 손잡고 딱 붙어 있으면서 담배를 뻑뻑 피워대는 매너의 의미는 말할 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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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는다는 것은 손해를 감수하겠다는 뜻도 품고 있다. 손을 잡으면  혼자 팔을 휘저으며 다닐 때보다 걸음걸이가 느려진다. 손을 잡는다는 것은 ‘나 좀 천천히 걸어도 되니 너와 같이 갈래'라는 메시지다. 손을 잡으면 또 둘 중 누가 앞서갈 수 없다. 누가 리드하고 누가 따라가는 모양새가 안나온다. 관계가 평등해지는 것이다. 주인과 하인이, 상관과 부하가 손을 잡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치인의 손잡기는 상대방의 한표를 내것으로 만들겠다는 욕심에 더해 제3자에게 보여주는 상징성이 담겨있다. 대립하는 정당의 정치인과 손잡는 것은 화합의 정치를 상징한다. 선거에서 승리한 상대방의 손을 잡아 번쩍 들어올려주는 것은 승복의 메시지다. 정치인들이 소록도에 가서 한센병 환자들의 두 손을 꼬옥 잡아줄 때는 그 분들이 병을 옮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려는 의도가 있다. 간혹 시늉만 하려다 들켜서 실망을 시키는 무지한 정치인도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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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결론이 손을 자주 잡자는 것이냐? 맞다. 우리는 손을 잡아야 한다. 지금은 좀 어렵다 하더라도 코로나만 잦아들면 비누로 열심히 손을 닦은 뒤에 다른 사람들의 손을 잡아 주자. 서로가 손을 잡아서 그 연결고리를 따라 찌릿찌릿 마음이 통하기 시작하면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세상은 더욱 평화로워질 것이고, 고통과 번민도 여럿이 나누면서 희석돼 견딜만해질 수 있을 것이다.  


손을 좀처럼 내밀지 않는 사람들의 손은 더욱 더 찾아가서 잡아 주자. 그가 고집스럽고 우월감에 차 있어서 그런 것이라면 적극적으로 손을 잡아서 고집과 우월감을 녹여주자. 그가 손이 쭈글쭈글하고 더러워서 미처 내밀기를 주저하는 것이라면 더욱 덥썩 잡아주자. 상대방은 감동한 나머지 나의 동반자가 되려고 애쓸 것이다. 이왕 손을 잡아줄 거면 두 손을 다 써서 잡아주고, 오래 잡아주자. 손을 떼자 마자 상대가 보는 앞에서 바지에 벅벅 손을 비벼 닦지는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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